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토 미도리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미도리트리플악셀.gif|width=100%]]}}}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midoriito3Lz.gif|width=100%]]}}} || || 3A || 3Lz || || 그런데 사실 한국과 일본이 전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, 아주 예전(1980년대)부터 [[남자]] 싱글에선 쿼드러플까진 몰라도 트리플 악셀조차 없는 선수들은 탑싱 취급을 못 받을 정도로 트리플 악셀이 정착되어 있다는 것이다. 일단 세계선수권 영상을 보면 탑싱은 물론이고 중위권 선수들만 되어도 다들 트악은 당연하게 시도한다. 그러나 [[남자]] 싱글과 [[여자]] 싱글에서 트리플 악셀의 위상은 당연히 다르다. 이토 미도리 이후 여자 싱글에서도 트리플 악셀러들이 드물게 등장했으나 그 20년 동안 제대로 된 트리플 악셀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은 이토 미도리가 유일하다. 위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. - [[리그베다 위키]] [[피겨 스케이팅]] 항목 中 || [[토냐 하딩]]부터 [[나카노 유카리]], [[류드밀라 넬리디나]], [[아사다 마오]], [[키히라 리카]]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뛰어넘는 점프력은 지금도 없다. 비교하기도 그런 게 일단 체공 높이 자체가 다르다. 남녀를 불문하고 세계 피겨 무대에서 정상권에 올랐던 최초의 아시아인으로 1990년대 후반~2000년대 초반 사이 아시아 선수들이 세계 [[피겨 스케이팅]]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데 기초를 닦았다. 북미에서는 '우아함'과 '교감'을 강조했고, [[유럽]]에서는 많은 운동량과 스피드를 내세웠고, 팬들이 [[일본]]의 경우 '어딘지 모르게 2% 부족한 포스트 이토 미도리'로 보였다. 실제로 이토 미도리 이후 [[사토 유카(피겨 스케이팅)|사토 유카]], [[수구리 후미에]], 온다 요시에, [[안도 미키]], [[아사다 마오]] 등 수많은 여자 싱글 스케이터들이 나타났지만 [[아라카와 시즈카]][* 이쪽은 [[김연아]]나 [[아사다 마오]] 같은 스타성보단 말 그대로 전성기는 이미 지나가 버린 30살 노장의 뒤늦은 투혼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을 뿐이다.]나 [[스즈키 아키코]][* 은퇴 후 안무가로 활동할 정도로 피겨 스케이팅 곡 해석 능력이나 스텝 능력, 음악을 타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. 특히 스텝 시퀀스 규정이 개정되기 이전 레벨 4를 받아본 몇 안 되는 선수였다. 외국 해설진들에게도 일본 여자 싱글에서 예외적으로 음악과 잘 어울리는 스케이팅을 한다는 평을 들었다. 당장 [[일본인]]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[[아사다 마오]]와 비교해봐도 안무를 비롯한 전체적인 스케이팅이 세련되고 깔끔하다. 과거 점프만 강조했던 일본 피겨 스케이팅에서 예술적으로 스케이팅을 하는 정말 레어한 선수였다.]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예술성 부족 논란에 시달렸다. 이를 두고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팬들과 스포츠 언론들이 그녀를 평할 때마다 '''[[일본]] [[피겨 스케이팅]]의 빛[*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여자 싱글 선수다.]이자 그림자'''[* 이후 일본 모든 여자 싱글이 되지도 않는 트리플 악셀을 해야만 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. 실제로 [[나카노 유카리]], [[아사다 마오]], [[안도 미키]](쿼드러플 살코), [[키히라 리카]]가 기술 하나에 프로그램 전체를 잡아먹혔다. 그러나 키히라 리카는 그나마 나은 수준의 점프를 보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.]라고 불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